사람답게 살아가라.

- 작가-사하촌의 작가는 1908년 경남 동래군에서 태어난 요산 김정한이다. 김정한의 문학비에는 이러한 글귀가 적혀있다. “사람답게 살아가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와 타협한다거나 굴복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이 아니다.” 김동리와의 일화 중 김동리가 김정한에게 “정한이 너 참여파 두목으로 한국문학 어지럽힐거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김정한은 “문학도 인간이 살아가는데 더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 아니냐, 자네는 정서나 혼으로 , 나는 기존의 환경을 고치기 위한 투쟁으로 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그의 글에는 당시 사회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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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배경-사하촌의 시대배경은 1930년대 구체적으로 1935년과 1936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는 일제시대로 한국문학에 있어서 현실을 반영하는 “현실성”이라는 키워드가 매우 중요한 시절이라 생각할 수 있다. 당시 한국에는 양대 매체(신문)가 있었는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이다. 1935~36년에는 카프 해산이후 사회주의 문학과 계급문학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었던 것 같다. 두 매체를 통해 드러난 당시의 문학사적 키워드는 ‘현실’, ‘생활’ 그리고 ‘신인’이었는데 이러한 시기에 김정한은 중요한 신인작가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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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내용-“사하촌”이라는 의미는 절 아래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사하촌에서의 절이라 함은 보광사를 말한다. 보광사의 중들과 식솔들로 이루어져있는 보광리 그리고 그 보광리에서 소작농으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성동리로 마을은 이루어져 있다. 당시 농촌의 사회구조를 보면 땅의 주인인 지주가 있고 그 지주의 땅을 관리하는 마름이 있다. 그리고 그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으로 구성된다. 즉 보광리는 지주와 마름의 마을이고, 성동리는 소작농의 마을이다. 성동리 사람들은 핍박을 받으며 어렵게 살아가는데 극심한 가뭄이 오면서 그간 곪아있던 갈등이 폭발하게 된다. 가뭄으로 논에 물을 대지 못하자 성동리 사람들은 물을 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고서방은 보광리 주민과 마찰을 일으켜 주재소로 끌려가기도 하고, 상한이는 배고파서 보광사 산에 올랐다 산지기에 쫓겨 죽고만다. 결국 농사도 흉작이 드는데 보광사 간평위원들은 소작료 마저 올리고, 조합이사는 성동리 주민들의 밀린 비료대금지불 기한에 대한 연기 요청도 무시한다. 결국 논에는 입도차압 푯말이 붙는다. 다음은 사하촌의 마지막 장면을 묘사하는 내용이다. “그리하여 하루아침, 깨진 징소리와 함께, 성동리 농민들은 일제히 야학당 뜰로 모였다. 그들의 손에는, 열매 못한 빈 짚단이며 콩대, 메밀대가 잡혀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긴 줄을 지어가지고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제를 탄원해 보려고 묵묵히 마을을 떠났다.” 사하촌의 철없는 아이들도 행렬의 꽁무니에 붙어서 절 태우러 간다고 부산히 떠들어댔다. 그 철없는 아이들의 삶 또한…절 아래 있는 마을, 즉 사하촌에 사는 한 나아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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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근래 마음이 어수선하고 좋지 않았다. 주말에 산책 겸 안사람과 동네 도서관에 들러 책을 집어 읽었는데 그 책이 김정한의 사하촌이었다. 회사를 관두고 사업이다 모다 시작한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사람에 대한 실망과 어이없음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무엇을 위해 저렇게까지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나 싶기도 하고, 지 딸린 가족 생각해서 그런가하며 이해하려해도 내 성격상 용납이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현실이 지주, 마름, 소작농처럼 계급이 뚜렷이 나누어져 있지는 않지만 우리네 삶이 꼭 소작농 같지 아니한가? 물론 그 시대보다 다양한 돈벌이와 가능성이 있지만서도 아둥바둥 살아보고자하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기도 한 것 같다. 그래도 사람답게 살아가자.
